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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쓰기

폐지 줍는 할머니

창 밖, 어느 집에는 목련이 한창이다..

그러다가 뚝-뚝 뚝-뚝

모두 떨어질 것이다.

그게 우리네 유한한 삶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갈 때면... 자주..

계단 초입에서 하나하나 박스를 추스리고 계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차근차근 박스를 정리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약간의 엄숙함마저 깃들여 있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말없이 할머니의 굽은 등을 뒤로하고 계단을 성큼성큼 밟아 오른다.

 

사실, 며칠 전에는 열심히 일에 집중하시고 계시는 할머니와 20-30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 이거 주워가시면.. 얼마나 받으세요?" 이 질문을 받은 할머니는 얼마 못 받는다며... 묻지도 않은 그녀의 여든 여섯의 세월을 풀어내신다.

 

"박스 주워가지고는 얼마 못받아요.. 내가 여기하고 다른 한군데 밖에 안가거든...

나는 이거 운동삼아 해요... 아들은 내가 이거 하는 거.. 알면 난리가 나겠지만...

나는 그저 운동삼아 겸사겸사 하는거지.. 그라면 밤에 잠도 잘와요. 밤에 잠이 안와 멀뚱멀뚱 눈뜨고 있는 것 보다야 훨씬 낫지..

그래서 운동삼아 하는 거라... 힘이들어서 여러군데는 못가고 여기하고 또 한군데, 두 군데만 갑니다."

 

"할머니 박스 주우시면 20만원 정도는 됩니까?"

 

"어데요? 10만원도 안되요."

 

"그러면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데요? 군에서 보조금은 나오나요?"

 

"어데.. 그런 할마이들 하고 나하고 같나? 그네들은 10만원 넘께 나오는가 보데... 나는 아들이 있어가지고 그런거 안나와.. 아들이 마산서 공부원인데.. 가끔씩 용돈하라고 돈을 줍니다. 근데 요즘은 며느리 눈치고 있고... 저네들 살기 바쁘니까... 저 그들도 힘들기라."

 

올해 86세의 할머니는 그 연세치고는 건강해 보였다.

그녀는 일본 야마구키 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20살에 거기서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고 번쩍한 다음에 쿵하는 폭탄음과 함께

해방이 되자 부모님을 따라 다시 한국으로 넘어 왔다.. 할머니의 원래 고향은 원래 합천이셨고...

현재 창녕에는 할머니의 첫째 따님이 살고 있어서 그녀도 창녕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슬하에 자녀 분은 모두 오형제을 두셨는데... 당시 유행하던 이질로 3명을 잃고.. 창녕에 살고 있는 63세의 첫째 딸과 마산에 막내 아드님을 건졌다고.. 서운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을 하셨다.


해방이되고 부산에 고무신 만드는 공장에서 20년을 넘게 일을 하셨고.... 고무공장을 나오니 어느듯 그녀의 세월은 오십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는데... 57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 심심할때는 경로당에는 가시나요?"

 

"경로당에는 매 티브이 보고 앉아서 노닥거리는 게 일이라 잘 안가요... 대신 나는 매일 교회가는 구마..

일찍 일어나서 예배보고 주일에도 나가서 사람들 만나고...하는 게 더 좋아요. 요즘에는 그기 樂입니더."

 

"그래도 할머니 교회에 나가시고, 이렇게 운동삼아.. 용돈벌이도 하시고 하니까.. 건강해 보입니다."

 

한참이 지나도록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젊은 말동무를 놓치기 싫으신 모양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계단에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있다.

그리고 나는 숙연히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작년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올해 생존해 계셨으면 여든다섯이 되셨다.

할머니는 일본 히로시마 섬 근처에 살고 계셨고... 원폭이 투하되던날 아궁이서 재가 확 솟구쳐 나오더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결혼을 하셨고 거기에서 아버지를 낳으셨다. 6.25 사변으로 할아버지를 보내시고 50년 이상을 홀로 사셨더랬다.

 

생전에 할머니에게 잘 해드려야 했지만...

80세 이후에 치매끼가 있으셨던 할머니는...

 

집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할머니의 집을 찾아 갔을 때...

할머니는 우리 손을 이끌며 돼지 갈비를 사주셨더랬다.

근데, 결혼 후, 내가 할머니를 위해 뭘 사드린 기억이 도무지 없다.

 

가끔 내가 할머니 보고 그냥 웃음을 지어 보이면

할머니는 그대로 말없이 빙그레 웃으셨다.

그저..  빙그레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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