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고 1주일이 지났다.
어제 오후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에 되자 슬그머니 그쳤고
오후엔 햇살이 비치더니 기온이 부쩍 올라 4월의 봄처럼 따듯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왔을 땐, 입고 있던 코트가 왠지 부담스러워, 코트 벗어 팔에 걸친 채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 메뉴로 뭘 먹을지는 정하지 않은 채 사무실을 빠져나와 무작정 걸었다.
오늘은 뭘 먹지?라는 질문에 동료가 굴 국밥을 추천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먹고 싶은 메뉴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상대의 의견에 별생각 없이 동의했다.
다행히 주문한 굴 국밥은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다.
살다 보니 잘 모르는 일들은 조금이라도 잘 아는 사람에게 맡겨두는 편이 좋을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설령 그것이 약간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해도 말이다.
‘잘 모른다’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나이가 드니, 아니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생각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한 듯한데
내가 접하고 있는 세상이나 인물들은 점점 ‘알 수 없음'의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사건이나 인물들을 내 범주 안에서 이해해 보려고 발버둥 쳤을 텐데......
이젠 나이가 들어선 지는 몰라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놓아두는 편이다.
이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개인적인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해하려 해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쉰이라는 나이를 넘고 보니, 세상과 상대를 이해해 보려 애쓰는 것이 이젠 상당한 피로감을 동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의 테두리? 혹은 법칙 같은 것들이 있다면, 50년의 세월 동안 배우고 겪은 것은 있어서 어슴푸레하게나마 알 것도 같은데,
삶이나 세상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의 테두리에 대한 확신은 강해지지만 그 디테일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져 가는 것을 어쩌면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 같으면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백내장 증상처럼 희부연한 상태로 놓여 있는 것에 몹시 불편해했고,
이걸 인정하지 못한 채, 제 딴에는 바로 잡거나 또렷하게 보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불확실한 채로 움직이는 세상과 사람이 오히려 '삶의 법칙'인 것처럼 순순히 인정하게 되고,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인생에 있어 낙담한 듯, 기운이 빠져있는 듯, 실패한 듯한 느낌이 들 때도 가끔 있지만
결국에는 이마저도 알 수 없고, 확실치 않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더니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간 방패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던 '주장'이나 '고집'도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늙어 간다는 것은 체력과 정신력이 예전과 다르게 떨어진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감도 떨어지며 세상의 힘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까지 쓴 문장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확신은 없다. 그저 조심스럽고 어렴풋하게 짐작만 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을 모호하고 흐릿하게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가 더 이상 싫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자위한다.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생각을 하던 별 상관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 맞고, 틀린 것은 딱히 없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어 버린 거다.
그저 내가 판단하고 있는 인생의 테두리를 믿으며, 오늘 하루하루 루틴에 충실할 뿐
그 외의 것들은 '잘 모르겠다'라고 아무렇게 말해버리는 거다.
인생은 살아가는가? 살아지는가?
내 대답은, 생은 때로는 살아지기도, 때로는 살아가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꾸만 잘 모르겠다고 되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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